프랑스 VS. 미국, 승자는? 1970년대에 열린 역사적인 패션 대결, ‘베르사유의 전투’

2024.11.20김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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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의 전투’는 무엇?

1973년 11월 28일, 현재까지 패션계에 기억되고 있는 역사적인 행사가 열렸습니다. 지금은 ‘베르사유의 전투’로 알려져 있지만 기존 명칭은 ‘Grand Divertissement à Versailles’, 프랑스와 미국 각 국가를 대표하는 다섯 명의 패션 디자이너들이 참여한 패션 대결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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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의 전투’는 누가 제안한 아이디어였나?

이 행사를 처음 제안한 인물은 바로 뉴욕 패션위크의 창시자로 알려진 패션 홍보 담당자 엘리노어 램버트였습니다. 램버트는 1948년에 최초의 멧 갈라를 열었으며, 1962년에는 CFDA를 설립하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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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1주년을 맞이한 역사적인 패션 배틀

‘베르사유의 전투’는 베르사유 궁전 복원을 위한 모금 행사로 시작되었지만, 기성복 패션의 붐에 시작을 알리며 전설적인 쇼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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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를 대표한 디자이너들은?

그레이스 켈리, 앤디 워홀 등 인물들이 참석한 행사에 프랑스를 대표해 이브 생 로랑, 피에르 가르뎅, 엠마누엘 웅가로, 마크 보앙, 위베르 드 지방시 다섯 명의 쿠튀리에들이 참여했습니다. 이들의 무대에는 가수 지지 장메르, 배우 카푸치네 등이 쿠튀르 의상들을 입고 화려한 공연을 펼쳤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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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참여한 디자이너들은?

미국의 디자이너들 오스카 드 라 렌타, 스티븐 버로우즈, 홀스턴, 빌 블라스, 앤 클라인이 선보인 무대에는 라이자 미넬리가 참여한 오프닝 외에는 공연이 아닌 의상에 집중한 쇼였다고 전해집니다. 이들은 다채로운 의상들과 광란의 20년대를 오마주한 무대 등으로 주목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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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패션쇼가 50년이 넘도록 기억되는 이유는?

‘베르사유의 전투’가 열린 1973년 당시 언론에서는 “50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프랑스에서 컬렉션을 처음으로 선보인 미국인 디자이너 다섯 명이 파리를 대표하는 쿠튀리에들을 압도했다”라며 “더 이상 미국의 패션을 무시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라는 평을 남겼어요. 이를 계기로 1943년부터 패션위크를 열었던 뉴욕이 패션 4대 수도 중 하나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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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쿠튀르 정신이 패션계를 지배했던 당시에 미국의 디자이너들을 공식 행사로 프랑스까지 초청한 것은 이례적이었죠. 패션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미국이 기성복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미국 디자이너들이 열 명의 흑인 모델들까지 무대에 세우며 미국의 다양성이 더욱 강조되는 행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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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 Images, @cfda, @phillipsauction, Stephen Burr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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